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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9(월) 한자와 명언 廢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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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속뜻사전
작성일25-06-09 12:04 조회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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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9(월) 

한자와 명언(2136)   

  廢 棄

*그만둘 폐(广-15, 3급) 

*버릴 기(木-12, 3급)


사회는 물과 같아서 혼탁하면 안 된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런 낡은 것들은 이제 모두 폐기할 시기이다’의 ‘廢棄’란 두 글자를 익힌 다음에 관련 명언 명답을 찾아보자. 


廢자가 본래는, 한 쪽 모퉁이가 무너져서 ‘사람이 살지 않고

 내버려 둔 집’(deserted house)을 뜻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집 엄’(广)이 의미요소로 쓰였다. 

후에 ‘내버려두다’(let be) ‘그만두다’(discontinue) 등으로 확대 사용됐다. 


棄자는 갓난애를 삼태기에 담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내다버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云’은 ‘子’자가 거꾸로 된 모양이니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겠다. 아득한 옛날에는, 원치 않는 아기를 낳은 경우 내다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버리다’(abandon)는 뜻을 그렇게 나타냈다. 


廢棄(폐:기)는 ‘그만두거나[廢] 내다 버림[棄]’이 속뜻인데, 

‘조약ㆍ법령 따위를 무효로 함’을 이른다. 비슷한 말로, 방기(放棄), 출폐(黜廢) 같은 것이 있으나, 잘 사용하지 않는다. 

맨 앞에서 말한 문제에 대한 유종원 명언 명답을 

아래에 소개해 본다. 유종원,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인공지능의 보충 설명도 참고 바랍니다.


“흐린 물을 없애야 맑은 물이 흐르고, 

 탐관오리를 없애야 청렴한 사람이 생긴다.”

  蠲濁而流淸, 견탁이유청

  廢貪而立廉. 폐탐이립염

    - 柳宗元


●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 위 명언의 주인공 유종원에 대해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인공지능(Gemini)에게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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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柳宗元, 773년 ~ 819년)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장가이자 시인, 사상가입니다.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명으로, 고대 한문 문체의 부흥을 이끈 

고문운동(古文運動)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같은 당송팔대가인 한유(韓愈)와 함께 '한유(韓柳)'로 불리며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종원의 생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재의 어린 시절: 어릴 적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21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했습니다.

▪개혁 운동 참여: 33세 때 당 순종(順宗) 시기에 왕숙문(王叔文), 왕비(王伾) 등과 함께 **영정혁신(永貞革新)**이라는 정치 개혁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이 개혁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환관과 귀족의 세력을 누르고 황권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좌천과 유배 생활: 그러나 영정혁신은 환관과 수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고, 유종원은 지방으로 좌천되어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주(邵州)의 책사로 좌천되었다가 두 달 만에 영주(永州) 사마로 다시 좌천되어 1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유주(柳州)로 폄적지를 옮겨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문학적 성과: 유배 생활은 유종원에게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하층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사회 현실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기에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자연을 소재로 한 시와 풍자적인 산문들이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유명한 시인 '강설(江雪)'과 풍자 소품 '삼계(三戒)'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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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원의 어머니에 대하여 더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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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원의 어머니는 노(盧)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당시 봉건사회에서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가 없던 시대에 아주 지식 있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유종원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서 매우 빠른 진보를 보였고, 4살 때 이미 십여 편의 고대 사부를 익숙하게 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노씨는 유종원이 학문에 정진하고 도덕적인 기품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영정혁신 실패 후 영주로 좌천되어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유종원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평생을 사무치는 슬픔 속에 살았고, 그의 작품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깊은 효심과 애통함이 묻어나는 글들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어머니는 유종원의 인생에서 정신적인 지주이자 그의 문학 세계를 더욱 깊고 성숙하게 만든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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